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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기사의 눈물②]"차 떼고, 포 떼니 남는 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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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2017-06-07 05:50:00  |  수정 2017-06-14 20:4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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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시스】박성환 기자 = 지난달 26일 오후 10시 서울 마포구 합정역. 희미한 가로등 불빛 사이로 낮은 천막이 들어섰다. 인도와 맞닿은 좁은 틈 사이에 처진 천막이 바람에 위태롭게 나부꼈다. 천막 사이로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은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천막을 힐끗 올려다본 사람들은 다시 고개를 숙여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렸다. 약속이나 한 듯 슬쩍슬쩍 스치는 눈빛이 부딪혔다. 굳이 누군지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한 공간이지만 그저 외딴 섬처럼 떨어져 있었다.

 "띵" "띵"

 스마트폰에서 '콜'이 뜨는 알림음이 연신 울렸다. 일순간 정적을 깨뜨렸다. 그래도 여전히 말이 없었다. 다만, 천막을 떠나는 이름 모를 누군가의 발걸음에 부랴부랴 시선이 꽂혔다. 천막 안 사람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스마트폰에 고개를 파묻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2시간 가까이 기다린 끝에 드디어 들어온 첫 번째 배차. 합정역에서 목동까지 1만 원짜리 '콜'을 가까스로 잡았다.

 천막을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빨라졌다. 지각 벌금 탓이다. 손님과 통화를 마친 뒤 10분 안에 손님이 있는 곳에 도착해야 한다. 숨이 턱까지 찰 정도로 헐레벌떡 도착했다. 채 10분이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첫 만남부터 순탄치 않았다. 거나하게 술 취한 50대 남성이 숫제 반말이었다. 난생처음 들은 욕도 뒤따랐다. 

 "○○야, 느려 터져서 먹고 살겠냐, ○○아…"

 그는 다짜고짜 차 키를 기자를 향해 내던졌다. 연신 욕을 내뱉으며 까맣게 선팅한 승용차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목을 축 늘어뜨렸다. 와이셔츠를 반쯤 풀어헤친 그에게서 술 냄새가 폴폴 났다. 억지로 안전벨트를 채워주고, 내비게이션을 틀자 마뜩잖은 얼굴로 기자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는 아직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웅얼거리는 군소리가 한참이나 귓가를 맴돌았다. 도로 위를 내달리자 제풀에 지쳤는지, 입을 반쯤 벌리고 이내 잠들었다. 내비게이션에 '화목한 우리집'으로 입력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희미한 가로등 불빛만이 차 안으로 번졌다.

 주차를 마친 뒤 남성을 깨웠다. 여러 번 깨웠지만, 그는 어둠에 파묻혀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끄잡아 당기려는 손길이 불편했나보다. 손을 뿌리치더니 입이 찢어질 듯 하품만 해댔다. 억지로 차에서 내린 그는 바지 주머니에서 꾸깃꾸깃한 1만 원짜리 지폐를 꺼내 던지듯 건넸다. 불쑥불쑥 올라오는 분노를 겨우 참았다.

 '을지로입구역-일산 서구 탄현동 ○○○아파트 3만원'. 자정 넘어 두 번째 콜을 잡았다. 손님은 40대 남성. 그의 차는 벤츠였다. 접힌 사이드미러를 피는 법을 몰라 우물쭈물하자 등을 툭 치며 핀잔을 줬다.

 그도 반말이었다. 그는 "이 차는 밟으면 밟는 대로 나가. 사고 나면 하루 일당이 아니라 평생 노예가 되는 거야"라고 말했다. 저절로 침이 삼켜졌다. 브레이크에서 서서히 발을 뗐다. 발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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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차가 출발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창문을 반쯤 열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술 냄새와 담배 냄새가 뒤섞였다. 헛기침을 하자 그는 화석처럼 굳은 표정으로 눈을 흘겼다.

 "먹고 살기 힘들지…"

 연신 한숨 섞인 담배 연기만 품어내던 그는 퉁명스럽게 한마디를 내뱉었다. 그는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가 소원한지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지 얘비는 지금까지 술 마시는데, 아들이라는 놈은 집에 들어가도 나와 보지도 않고, 학원비는 왜 이렇게 많이 드는지…"라며 볼멘소리를 했다. "세상이 쉽게 달라지지 않아. 정치하는 놈들은 다 도둑놈이야. 도둑놈. 믿을 놈이 하나도 없어" 정치인들에 대한 불만도 쏟아냈다.

 그의 두서없는 말을 한참 듣다보니 어느새 차는 자유로에 들어섰다. 백미러를 조정해 그가 잘 있는지 확인했다. 내달릴 때마다 그의 고개가 앞뒤로 끄덕였다. 집 앞에 도착하자 그는 서둘러 차에서 내렸다. "고생했다"는 말과 함께 3만 원을 건넨 그는 아파트 안으로 자취를 감췄다.

 낯선 곳에 덩그러니 혼자 놓인 듯 했다. 걷고 또 걸었다. 한참을 걸어가 탄현역 인근의 은행 ATM실로 들어갔다. 이곳에 만나 대리기사 김은천(48)씨는 "막차를 놓치면 첫 차가 올 때까지 은행이나 편의점에서 시간을 때워야 한다"며 "운 좋을 때는 집 근처 콜을 잡기도 하는데, 이것도 쉽지 않다"고 푸념했다. 2년 전 의류 수출 사업에 실패한 뒤 밤마다 대리기사로 나서는 그에게 은행 ATM실은 길 위의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선뜻 길을 나서지 못했다. 무작정 걸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대리기사 전용 셔틀버스 정류장에 도착했다. 요금 3000원을 내고 강남역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말 소리가 없었다. 버스도 외딴섬이나 다를 바 없었다. 생면부지 기자에게 어느 누구도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그저 빈 의자들 사이로 삐죽삐죽 검은 머리를 내민 채 스마트폰을 톡톡거렸다. 

 옆자리에 앉은 대리기사 최성현(43)씨에게 가장 힘들었던 점을 묻자 한참 만에야 답했다. "그래도 요즘은 예전에 비해 진상 손님이 많이 줄었다"면서 "술 취한 사람 1년만 상대하면 누구나 다 성인(聖人)이 된다"며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앞에서 대화를 듣던 한 대리기사가 기분이 언짢은 듯 "을(乙) 중에 을(乙)이 무슨 성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대화가 또 끊겼다. 버스 안에는 적막이 흘렀다. 도착 때까지 스마트폰을 두드리는 소리만 간간이 들렸다.

 새벽 2시를 넘어서 강남역에 도착했다. 다시 은행 ATM실로 들어갔다. 집으로 가는 첫 차를 기다리는 대리기사들이 혹시 모를 콜을 잡으려고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새벽 1시부터 콜이 급격하게 줄더니 2시가 넘어가자 거의 사라졌다.

 이날 기자는 2개의 콜을 받고, 총 4만 원을 벌었다. 이 중 업체 중개수수료 8000원과 셔틀버스 비용 3000원 등을 제외한 2만9000원을 손에 쥐었다. 전부 수입이 아니다. 보험료와 관리비 등을 내야한다. 집으로 가는 첫차를 기다리는 새벽녘이 깊어질수록 도시는 쌀쌀했다.

 sky0322@news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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